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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에 부딪혀 앞이 캄캄할 때, 남들에 비해 내가 가진 조건이 다 불리해 보일 때…. 이럴 때 이 사람의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이 사람과 1시간 30분의 인터뷰를 마쳤을 때 기자는 지치기는커녕 마치 힘이 나는 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그는 지상 최고의 모티베이터였다.

일본전산(日本電産)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65·사진)사장. 이 사람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엮은 책 〈일본전산 이야기〉는 올 초에 나와 지금까지 30만부가 팔렸고, 삼성경제연구소는 'CEO들이 여름휴가 때 읽을 책 20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영자로 꼽힌다. 1973년 가정집 한 귀퉁이 창고에서 전기 모터 회사를 창업해 지금은 140여개 계열사에 13만명의 종업원, 매출 약 8조원의 그룹을 일궈냈다. 일본판 벤처 신화이다. 게다가 국내외 27개 회사를 인수합병(M&A)한 뒤 모두 경영을 정상화시켜 '기업 재생의 신(神)'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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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최신판 전국 미달대학 프로과외강사

2008/02/24 09:22

복사 http://blog.naver.com/yoonkhsc/80048719385

앞에 *표는 올해 첫 추가모집
재학생이 소규모인 대학은 제외

대학명 추가모집인원

서남대 │ 1977
경주대 │ 563
초당대 │ 532
한중대 │ 454
호남대 │ 446
대불대 │ 410
동신대 │ 369
남부대 │ 343
동명대 │ 333
호원대 │ 320
남서울대 │ 304
경남대 │ 237
대구예술대 │ 236
한북대 │ 228
전주대 │ 223
동양대 │ 209
*조선대 │ 190
백석대 │ 182
경동대 │ 174
탐라대 │ 166
신경대 │ 163
경운대 │ 162
신라대 │ 160
*충북대 │ 159
진주국제대 │ 158
중부대 │ 157
영산대 │ 155
고신대 │ 154
영동대 │ 145
배재대 │ 143
관동대 │ 142
청운대 │ 137
순천향대 │ 131
광주여자대 │ 124
삼척대 │ 123
경일대 │ 122
대진대 │ 121
제주대 │ 121
평택대 │ 119
*서울산업대 │ 112
군산대 │ 108
부산외국어대│ 104
상주대 │ 104
*대구대 │ 102
상지대 │ 101
우석대 │ 99
*단국대(천안) │ 91
한신대 │ 86
목포대 │ 82
광신대 │ 81
목원대 │ 80
*동의대 │ 80
한밭대 │ 75
경북외국어대 │ 69
*동국대(경주)│ 69
을지대 │ 68
대신대 │ 66
*금오공과대 │ 65
선문대 │ 62
한서대 │ 61
서원대 │ 59
*인제대 │ 55
명신대 │ 55
한경대 │ 54
수원대 │ 52
건양대 │ 52
*원광대 │ 51
*창원대 │ 50
예원예술대 │ 50
청운대 │ 49
호서대 │ 49
협성대 │ 48
안동대 │ 47
안양대 │ 47
*울산대 │ 46
*계명대 │ 45
*동서대 │ 44
*삼육대 │ 18
*영남대 │ 17
경원대 │ 8
 
 rewq753  님의 쪽지에 따르면...
 
미달대(추가모집)의 자료가 잘못됐으니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경성대,동아대)는 2008학년도 추가모집 안했음.


연합뉴스발췌 08.2.1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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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월 1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는 교육인적자원부를 과학기술부와 통합해 ‘인재과학부’로 개편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무시하고 인재, 즉 엘리트만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조직 개편이라 할 수 있다. 전교조는 물론 이명박당선자에게 우호적이었던 한국교총과 뉴라이트계열 교육단체까지 나서서 강력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반발 직면한 ‘인재과학부’
인재과학부의 또 다른 의미는 기업체가 요구하는 학생들을 키워내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졸업 후 기업에 취직하기 때문에 기업 요구가 교육과정에 일정 부분 반영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 교육은 기업의 요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 확립과 다가올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포괄적 능력을 습득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업의 요구만 반영되다보면 대학교육이 전인적 교육이 아닌 기능 중심의 교육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된 날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가 전국 대학 교무처장들을 상대로 "기업이 바라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면 대학도 결국 망한다"고 말한 것도 ‘인재과학부’란 명칭과 연계되면서 걱정를 낳게 만든다.
한편, 이명박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대학 강국 5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학관치 완전 철폐 △취업 100% 대학 프로젝트 △맞춤형 대학생 지원 시스템 △2080 평생학습 플랜 △글로벌 연구지원 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공약 같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대보다는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학 강국 5대 프로젝트
먼저 관치 철폐를 위해 입시관련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로 넘기고, 재정 지원 기능도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으로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정부의 대학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대학이 자생적으로 재원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와 세제개혁을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국립대학 법인화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당장 3불 정책과 관련해 수도권 주요 대학은 즉각 폐지를, 지방대는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교협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대학 사이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입시 문제를 대교협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교협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대학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시가 완전한 대학 자율이 되면 본고사 도입은 시간문제가 된다.
학진으로 재정 지원 기능을 넘기고, 일정 지표를 산출해 이를 바탕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포뮬러펀딩(formula funding)제도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양극화 해소나 지방대학 육성 등과 같이 정부 정책 의지가 반영된 재정 지원은 포뮬러펀딩과 별개로 중앙 부서에서 집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학이 자생적으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대학간 극심한 양극화와 별개로 무리한 투자가 발생해 대학 예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크고, 대학 내에 무분별한 상업시설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 법인화 추진의 방침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등록금 폭등의 예에서 보듯이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재정 마련 방안 없어
두 번째 프로젝트인 취업률 100%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일뿐더러 이를 강제하기 위한 정책 역시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공약 내용은 대학교육에 대한 평가·인증·퇴출 시스템을 구축하고, 취업률 높이는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며, 특성화 전문대학에 대한 수업연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퇴출이 본격화되면 사립대학이 개인적 영리추구의 수단으로 전락 것이고, 취업률 높은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고, 대학 교육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전문대학 일부 학과의 수업연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전문대학 설립 목적을 망각하거나 육성정책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 번재 프로젝트는 맞춤형 대학생 지원 시스템 마련이다. △소득 2분위 이하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생활비 등 제공 △근로장학금 확대 △소득 5분위 대학생까지 등록금 무이자 융자 △학자금을 소득연계형 융자제도로 전환 등을 밝혔다. 또 △개인의 대학기부금에 대해 10만원까지 세액 공제하도록 하고, 이를 교내 장학금으로 사용하도록 하며 △개인별로 평생학습계좌를 갖도록 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국가교육재정 확보 계획을 밝히지 않아 공약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 이와 함께 등록금 관련 정책도 등록금 인상의 핵심 주체인 대학 자율성은 보장하되,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전형적인 미국식 신자유주의정책을 그 기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생 등록금 지원 방침만 밝히고 있을 뿐 무리한 대학 등록금 인상 금지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따라서 다양한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폭등은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 2080 평생학습 플랜과 글로벌 연구지원 시스템 도입도 취지는 긍정적이나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과 유사한 부분이 많거나 일부 추가된 내용만 있어 특별히 평가할만한 것이 없다.

걱정스러운 자율, 경쟁 그리고 실용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크게 보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같다. 하지만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가 점차 확대된 것은 맞지만 이들 정부는 형식적이나마 국가와 사학법인, 대학 당국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인수위 정책 기조를 보면 책무성 강화라는 최소한의 입장 표명도 없이 그 자리에 ‘실용’을 집어넣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정부 대학교육 정책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다’는 극단적 신자유주의로 치닫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는 이명박정부 인수위 교육정책 핵심 담당자들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시발이 되었던 김영삼정부의 교육정책을 만들었던 인사들이란 점도 작용한다.
이명박정부 집권 5년은 대학구성원들에게 매우 잔인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대학 공공성 제고와 올바른 교육개혁을 유도하기 위한 방도를 찾는 것은 대학구성원들 몫이다.


-출처 한국대학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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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데스크탑은 인터넷에서 IP 주소만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컴퓨터 또는 허가 받은 상대방의 컴퓨터에 접속하여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XP에서는 아주 손쉬운 원격접속프로그램을 제공하며 Windows 2000,2003에서는 터미널 서비스형식으로 보다 강화된 원격접속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XP에서는 프로페셔널 버젼만 지원합니다.)


1. 터미널 서비스 설정 전에 먼저 사용자 계정과 암호를 만듭니다.


[제어판] → [사용자 계정] 을 클릭 하여 사용자 계정을 생성합니다. 만들 때는 관리자 계정 이외의 계정을 만듭니다.


2. [제어판]의 [시스템] 메뉴를 클릭하고 원격 탭을 클릭합니다.
 
원격 탭의 메뉴는 크게 메신저를 쓰는 원격 지원과 터미널 서비스인 원격 데스크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용자가 이 컴퓨터에 원격으로 연결할 수 있음'에 체크한 후 적용 또는 확인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 관리자 권한을 가진 사람은 바로 터미널 서버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외부에서 접속하기

먼저 XP가 아닌 다른OS에서 접속 할 때는 Windows에서 제공하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접속하려는 컴퓨터에 설치해야 합니다.(리눅스 계열에서 Windows계열로의 접속은 불가능 합니다.) 터미널 서비스 클라이언트는 윈도우 CD 안에 들어 있으며 SUPPORT\TOOLS\MSRDPCLI.EXE 에 위치 하고 있습니다. 


1) 터미널 서비스 클라이언트를 설치한다. 윈도우 XP를 쓰는 컴퓨터라면 따로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필요 없이 보조 프로그램 → 통신 → 원격 데스크톱 연결을 클릭 하면 됩니다.


2) '컴퓨터' 항목에 터미널 서버의 IP주소를 넣고 '연결' 버튼을 누릅니다.


3) 로그온 화면이 나타나면 처음 컴퓨터에 사용자계정에 설정한 계정과 암호를 넣습니다. 계정과 암호가 올바르다면 터미널 서버 컴퓨터의 윈도우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원격데스크탑 포트 변경 방법


※ 원격데스크탑 포트 변경

 
원격 데스크톱의 기본 포트는 3389포트다. 그런데 왜 기본 포트를 쓰지 않고 변경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보안때문이다. 기본 포트를 사용하게 되면 크래커(Cracker)에게 내 PC에 있는 정보들 다 가져가슈!라고 하는 것과 같다. 원격제어를 설정한 이상 외부에서도 내 컴퓨터로 접근이 가능하기에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시작메뉴 → 실행 → regedit 실행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Terminal ServerWinStationsRDP-Tcp
10진수로 새로운 포트번호 입력, 확인을 클릭
 
 

 
 
 
※ 방화벽과 공유기에서 포트 허용
 
윈도우에 포함된 방화벽 사용시 ' 시작메뉴 → 제어판 → 보안센터 → 윈도우 방화벽 → 예외 ' 란에서 위에서 변경한 포트를 추가 및 예외 체크를 해준다. 만일 별도의 방화벽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설정에서 마찬가지로 예외를 해줘야한다.
 
 
 
 
공유기도 작은 방화벽 역할을 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내부에 있는 PC와 통신을 하려면 해당 포트를 개방을 해줘야 한다. 공유기의 포트 개방은 공유기 매뉴얼을 참고하기 바란다. (포트 포워딩, 가상서버, 포트 트리거 등) DMZ를 이용해도 좋지만 특정 포트만 개방하는 것이 조금 더 안전하다.
 
 
원격데스크탑 접속 방법

- 원격 데스크톱 연결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 컴퓨터 항목에 주소를 입력할 때 다음과 같이 합니다
   xxx.xxx.xxx.xxx:nnnn
   여기에서 xxx.xxx.xxx.xxx는 IP 주소이고
   nnnn는 포트번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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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잘한다"는 기자 지적에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는 '유인자능호인능오인(唯仁者能好人能惡人·인자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이라는 공자 말씀을 칠판에 적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동생은 "오빠는 꼭 색깔 있는 분필을 쓴다"고 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과외 선생에서 교육재벌로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과외는 있는집 애들만 도와… 온라인 강의는 평등"홈쇼핑 채널 보고 '학원이 집으로 온다' 아이디어 처음 생각

사람 팔자(八字)는 여러 번 바뀐다. 1987년 2월 26일, 서울대 졸업식날 손주은(孫主恩·47) 메가스터디 대표의 운명이 방향을 틀었다. 전날 아내는 빈털터리 대학생 남편에게 "통장에 3만원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4학년 손주은은 졸업식장 커피 장수가 됐다.

커피 팔아 번 돈 5만원으로 1인분에 2000원짜리 동태찌개 4인분을 사 먹고 남은 돈을 아내에게 준 다음 날 그는 예전 하숙집을 찾았다. '과외 자리를 소개해달라'는 청을 넣기 위해서였다. 3월 2일 '대학생 과외 선생 손주은'은 서초구 잠원동 한신아파트 307동으로 출근했다.

21년 후 손주은은 4000억 재산가가 됐다. 그가 만든 메가스터디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지 4년 만에 시가총액 순위 2위가 됐다. 작년에만 1633억원의 매출에 583억원의 영업 순익(純益)을 올렸다. 올해 메가스터디 매출목표는 2100억원이다.

봄비 뿌리던 22일 인터뷰를 위해 서초동 메가스터디 본사를 찾았다. 3시에 약속을 했지만 그는 15분쯤 지나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투자자와 상담하던 중 빠져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인터뷰 뒤에는 일본 투자자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의 성적을 단숨에 끌어올렸나요.

"전교에서 200등 정도 하던 여학생이었죠. 5개월 만에 전교 15등을 만들었습니다."

―대박이 터졌군요.

"월 20만원짜리 과외 선생이 딸 성적을 확 올려놓자 어머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오빠도 맡아달라는 거예요. 남자 애는 월 450만원을 주고 강남 최고의 A급 족집게 강사들에게 전 과목 과외를 받았는데 입시에 실패했거든요."

―그 재수생도 성공했겠죠?

"원하던 대학에 갔습니다. 나중에 행시(行試)까지 합격해 지금은 고위 공무원이 됐습니다. 소문이 나자 그 아파트 라인을 돌며 과외를 하게 됐죠."

―살림이 나아졌겠군요.

"첫 과외를 맡았던 아이 어머니가 목포여고 출신이었어요. 그분이 동창들에게 저를 소개했어요. 오라는 데 다 다니니 연 5000만원 수입이 되더군요. 그 다음 해에는 2억 가까이 번 것 같습니다. 대기업 사원 월급이 30만~50만원 할 때였어요."

1961년 3월생 손주은은 3수(修) 끝에 서울대 81학번이 됐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 3학년으로 월반(越班)할 정도의 수재였지만 79년에는 340점 만점인 예비고사에서 312점을 받고도 서울 상대 진학에 실패했다. 80년에는 299점을 받았다.

―공부를 잘해야 학생도 잘 가르치나요?

"저는 몰아치기로 공부하다 몰아치기로 놀았어요. 모범생들은 남을 잘 가르치지 못해요. 문제 있는 아이들이 과외 받는 거잖아요. 자기가 일탈(逸脫)해봐야 남도 이해할 수 있죠."

―어떤 스타일로 가르칩니까.

"전 과목을 혼자 다 가르쳤어요. 재수생 2명을 가르칠 때는 도서관에 가 제 좌우에 앉히고 셋이 함께'수학의 정석'을 풀죠. 어느 검사(檢事) 부부를 여행 보내고 그 집에서 9박10일간 학생들과 '지옥훈련'을 한 적도 있어요. 집중이 되면 하루에 암기과목 하나를 끝낼 수도 있죠. 나머지 어머니 9명이 하루씩 와 밥해줬죠."

―학생뿐 아니라 부모도 괴롭혔군요.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학생은 없다는 말이 맞아요. 저는 학부모 재(再)교육도 했어요. 현대철학도 강의하고 외부 강사도 초청했죠. 1주일에 두 번 이상 빠지면 아이를 제적시킨다, 대신 개근하면 수업료 10%를 할인해준다고 했죠."

―동영상 강의를 보니 욕도 잘하던데 계산한 겁니까?

"공부 못하는 애들에게는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것보다 '돌대가리 같은 놈아'라고 하면서 한대 패는 것이 감동을 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학생들은 누가 자기에게 헌신하는 선생인지 알거든요. 공자가 말한 '유인자능호인능오인'(唯仁者能好人能惡人·인자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도 같은 맥락입니다."

―과외 선생이 천성인 것 같군요.

"처음에는 2년만 하고 과외 선생 생활을 끝내려 했죠. 90년 3월부터 사시(司詩) 준비를 했어요. 1주일 공부해보니 이게 아니다 싶더라구요. 사시 1차 끝나니 다시 어머니들이 '합격자 발표(8월) 때까지 놀면 뭐 하느냐'고 해 과외를 재개했죠."

―돈 잘 벌어 집안에서 좋아했겠군요.

"웬걸요. 돈을 벌었던 88년 추석에 집(경남 창원)에 내려가려고 기차표까지 끊었는데 어머니가 아내에게 전화해'오지 말라'고 했다는 거예요. 아버지가'서울대 나온 녀석이 과외 선생 하고 있으니 쪽팔린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 뒤 10년간 고향에 안 갔어요."

손주은은 1990년 11월 처음 학원을 차렸다. 그러나 여전히 '과외선생을 계속해야 하나 독일로 유학이라도 갈까…'하고 긴가민가하던 그에게 비운(悲運)이 연달아 일어났다. 91년 9월 15일 일요일, 네 살 아들과 생후 6개월 된 딸을 데리고 대방동 교회에 다녀오던 아내 셋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함께 교회에 갔다가 3시30분 과외 약속이 잡혀있어서 먼저 나왔어요. 평소 차를 아내가 모는데 그날따라 피곤하더군요. 아내에게 '내가 차 몰고 갈 테니 너는 택시 타고 가라'고 했어요. 오후 5시30분쯤 과외 하는 집으로 연락이 왔어요. 큰일 났다고."

―어떤 상황이었나요.

“3修끝에 서울대 입학… 과외로 年2억 번적도 공부 못하는 애들 가르치다 보니 욕도 잘해 학생들 잘 가르치려 부모 재교육한 적 있어”

"가족이 탄 택시가 사육신(死六臣) 묘를 지나 부근 고가도로 교각을 들이받은 거예요. 병원에 전화해보니'세 명 전부 의식이 없다'는 거예요. 네 살 아들은 얼마 못 살았어요. 의식 잃었던 아내는 12월 퇴원했습니다. 퇴원 전날 아들 죽은 걸 알려줬죠."

―딸은요.

"뇌수종이 와 뇌에서 척수가 안 빠지는 증상이 나타났어요. 살아도 평생 장애가 생긴다더군요. 아내와 딸아이 데리고 퇴원할 때 '그래도 살아있는 게 어딘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다음 해 5월 5일 아파트 바닥에 머리를 부닥치고 말았어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군요.

"정말 어이가 없었죠. 하루에도 몇 번 씩 자살해버릴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학원 강의마저 없었으면 미쳤을 겁니다."

강남성모병원에서 한 달간 투병하던 딸은 92년 6월 11일 새벽 4시반 사망했다. 충북 청원군 공원묘지에 딸을 묻고 온 손주은은 딱 2시간 눈을 붙인 뒤 그날 오후 6시 학원으로 가 강의를 했다.

"그때는 수업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나는 거예요. 수업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학생들이 전부 엉엉 우는 거예요. '선생님 제발 그만하세요'하고요. 우는 학생들을 놓고 수업을 더 못 하겠더군요. 오후 7시30분까지 수업하다 '그래 그만하자. 사흘만 쉬고 올게'라고 했어요. 그 길로 제주도로 갔어요. 죽은 두 아이 생각이 96년 가서야 안 나더라고요."

손주은은 그 뒤 자녀 둘을 다시 얻었다. 그들이 지금 중학교 3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다. 그렇지만 그는 사고 이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주 60시간씩 강의를 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강의 외에 탈출구가 그에게는 없었다.

서른여섯이던 96년 말 손주은의 팔자는 다시 한번 바뀐다. 학원은 학생들로 넘쳤지만 살면서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때 그의 재산은 30억원 가까이 됐다.

"과외가 사회적인 악(惡)이잖아요. 학생과 과외 선생 개인 사이는 선(善)이지만 사회적으로 분명 나쁘죠. 특수한 계층의 있는 집 아이들의 '밑'을 닦아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떠나지 않았어요."

―어떤 결론이 나왔나요.

"30억원으로 사립학교를 하나 만들까 생각했어요. 과외로 더럽게 번 돈 공교육으로 깨끗하게 쓴다, 신문기삿감 아닌가요? 그런데 찜찜한 거예요. 공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 돈으로 명예를 사겠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던 거죠."

―그래서요.

"96년 12월 31일 경기도 이천에 내려가 97년 1월 1일까지 34시간을 집중적으로 생각했어요. 결론은 기왕 하는 거 '깨끗한 장사꾼'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제 학원, 두 학원 원장 친구를 모아놓고 학원의 합병을 선언했어요. 올해 매출은 50억으로 한다, 앞으로 1000억까지 한다고 목표까지 제시했죠."

―어떤 반응이 나왔나요.

"저를 미친놈 취급하더군요. 게다가 학원료도 정부가 정한 대로만 받겠다고 했죠. 당시 제 학원에서만 월 순익이 5000만~6000만원씩 나오던 시절입니다."

―합병 후 어떻게 했습니까.

"당시 부원장에게 운영을 맡기고 저는 '대중강사'로 나섰습니다. 강남 학원가에 이력서를 다 뿌렸어요. 한 군데도 연락이 안 오더군요. 학원들을 일일이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당했어요. 딱 한 군데 원장만 만나주더군요."

―뭐라고 설득했습니까?

"9년간 언더그라운드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실적 자랑도 하고요. 무슨 과목 강의할 거냐고 묻더군요. 전 과목 다 한다고 했더니 웃으며 하나만 하래요. '수학 강의 하겠다'라고 했더니 전공이 뭐냐고 해요. 서양사학과 나왔다니 역사 전공한 놈이 무슨 수학이냐는 거예요. 저는 당시 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는 게 불법이었던 걸 몰랐던 거예요. 거기서도 쫓겨 났죠."

―어떻게 강남 대일학원에 서게 됐죠?

"서울시의원으로 있던 친구가 '백'을 썼죠. 전단지를 10만 장이나 뿌리고 10개반을 개설했는데 7개 반에는 한 명도 안 오고 세 개 반도 두 명, 세 명, 세 명 이렇게 왔어요."

―특이한 학생들이네요.

"이상한 애들이 약간씩 있거든요. 유명 선생은 피하고 이상한 선생 강의만 찾는 아웃사이더들이죠. 그 아이들 데리고 피 토하듯 강의했어요."

―뭔가 보여주려고 했습니까?

"저를 문전박대한 학원장들한테 꼭 한마디씩 했거든요.'당신들 나를 안 잡은 게 일생일대의 후회가 될 거'라고요. 몇 년 뒤 그 사람들은 정말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학생 두세 명 놓고 한 강의 이야기를 들으니 배 12척 가진 이순신 장군이 연상되는군요.

"저는 그때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종합 사회'강의를 했어요. 요즘 말하는 크로스오버죠. 잘 가르친다는 소문은 학생들이 냈어요. 맨 먼저 한성과학고 어머니들이 달려왔어요."

―그 뒤로 순풍에 돛을 단 겁니까.

"아니죠. 한성과학고 어머니들이 제 소유의 학원으로 나를 만나러 오전 11시30분쯤 왔는데, 시설이 형편없는 데 놀라 전부 가버렸어요. 그중 한 어머니 연락처를 알아 밤 11시쯤 전화했죠.'저를 만나지 않은 게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가 될 겁니다.' 다음 날 그분이 저를 찾아왔죠."

서울 서초동 메가스터디 통합사옥 대표실 안마 의자에 앉은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이 의자가 건물 전체에서 손 대표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협박을 잘 하는 성격입니까.

"자신이 있었던 거죠. 1주일 뒤 대원외고 학생들이 30명 오고 다음 주에 이화외고 학생들이 40~50명 오는 식이었어요. 5개월 만에 100명씩 20개 강좌를 완전히 채웠어요. 2001년에는 월 6750명까지 가르친 적이 있어요."

손주은의 팔자는 99년 다시 바뀐다. 집에 케이블TV가 설치된 첫날 홈쇼핑 채널을 보다 깜짝 놀랐다. 거기 사교육시장의 답이 있었던 것이다.'우리가 백화점에 가는 게 아니라 백화점이 우리 집으로 오는 거구나. 그럼 학생이 학원 가는 것이 아니라 학원이 집으로 가는 시대도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겠군요

"행동에 옮긴 건 2004년 4월입니다. 메가스터디를 만들어 인터넷 강의를 하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전부 다 미쳤다는 거예요. 사고 친다고요."

―그때는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제가 강남대일학원에서 강의하고 제 소유의 학원 세 곳에서 번 돈으로 서울 주요 지역의 학원들을 인수했거든요. 오프라인에 진지(陣地)를 구축한 상태였죠. 그래서 2000년 7월 12일 메가스터디 법인을 설립한 겁니다. 증자할 때도 꺼리는 학원장들을 억지로 참여시켰는데 나중에 전부 100억, 200억씩 챙겼죠."

―인터넷 강의 방식이 생소하지 않았나요.

"저 빼고 전부 동영상 강의를 15분짜리로 제작하자고 했죠. 강의 15분에 나머지는 오락 요소를 넣는 '에듀테인먼트'가 당시 대세였어요. 그때 메가스터디보다 앞서 동영상 제작한 업체가 많았는데 전부 그런 식이었죠. 저 혼자만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주장했죠."

―수긍하던가요?

"끝까지 말을 안 듣기에 '주식 수(數)로 하자'고 밀어붙였죠. 그래서 현장 강의를 라이브로 찍어 내보내게 된 겁니다. 대박이 난 거죠. 15분짜리 동영상 내보낸 회사들은 다 망했어요."

―지금 메가스터디 고등부만 강좌가 2500개죠. 어떻게 우수 강사들을 모았습니까.

"처음에는 각 과목에 전국 최고의 에이스를 한 명씩만 모아 시작했어요. 최고의 강사는 강의를 할수록 학생들의 기(氣)를 빨아들여 체력이 보강됩니다. 강의 끝날 때 녹초 되는 강사는 에이스가 될 수 없습니다. 강사 스카우트할 때 그 기준에 따르죠."

―본인이 소심하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결단이 빠른 것 같습니다.

"소심하지만 결단력이 있기도 하죠. 고민을 계속 하다가도 마지막 순간에는 굉장히 냉정하게 결정하는 편이죠.

―회사를 만든 지 10년이 안 돼 몇천억대 거부(巨富)가 됐는데 행복하십니까.

"92년에 둘째 아이 죽으면서'행복해지겠다'는 욕구를 버렸습니다. 하도 엄청난 일을 당하고 나니''내 인생은 이제 손해 볼 거 다 봤다'라는 생각이 들고 세상에 초탈(超脫)해졌다고 할까요. 인생의 행복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강박관념이라고 봅니다. 돈 벌었다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메가스터디 회사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1232년 고려 사람들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고금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간행한 이래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과 교육은 일반 대중들에게 급격히 확산됐습니다. 21세기 우리는 제2의 금속활자 혁명의 현장에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육 정보를 전국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은 그럴싸한데 그래도 메가스터디는 과외 재벌 아닙니까? 학생 괴롭히는 입시제도 양산해내는 교육부가 은인(恩人)이잖아요.

"저는 우리 교육 정책의 부산물로 메가스터디가 성장하는 건 원치 않습니다. 사교육 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사라져야 한다고 봐요. 학생들이 학원을 너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해보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죠."

―말은 그렇게 해도 메가스터디 매출이 줄어들면 속이 쓰릴 텐데요.

"저는 이미 오프라인 학원은 학원에 나올 수밖에 없는 재수생 위주로 바꿨어요. 학원생의 65%가 재수생입니다. 반면 온라인시장을 통해 학원비의 4분의1 가격에 강남 최고 강의를 전국 어디서나 들을 수 있잖아요. 과외의 지역 불평등은 우리가 해결했다고 자부합니다."

메가스터디는 고등부, 중등부에 이어 의·치학 전문대학원 진학자를 위한 파레토 아카데미, 7·9급 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베리타스 같은 자회사를 만든 데 이어 중국·일본 시장 진출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세계 최강의 사교육 열풍이 역설적으로 세계 최강의 사교육 회사를 낳은 토대가 된 것이다.

아폴로그룹 같은 세계적인 투자 회사는 아시아에 1조원 펀드를 만들었는데 메가스터디를 주로 매수하고 있다고 한다. 메가스터디의 총주식 가운데 51% 이상도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 메가스터디는 '과외재벌' '사교육기업'쯤으로 취급되지만 세계는 "한국 선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가르친다"고 인정한 것이다.

앞으로의 구상에 대해 묻자 손 대표가 "매년 수백만 명이 응시하는 미국 SAT시험에서 한국 학원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할 즈음 줄곧 인터뷰를 '감시'하던 손은진 전무가 오빠의 말을 제지하고 나섰다. '골드미스'로 오빠를 돕는 노동신문 기자 출신의 이 여동생은 오빠에게 주식을 한 주도 못 받았지만 경영 기밀이 공개될 것 같자 몸이 단 것 같았다.

 

◆손주은 대표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는 1961년 3월 경남 창원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6남매의 교육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는 전형적인 맹자형(孟子型)이었다고 한다. 손 대표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사들은 "아이의 능력이 4학년 수준"이라며 월반(越班)을 제의했다고 한다. 부모들은 4학년에 올라가면 '왕따' 당할 것을 염려해 3학년으로 월반시켰다.

학생 가르치는 것으로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손 대표지만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 교육은 직접 하지 못한다고 한다. 성적을 묻자 "반에서 5등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술은 전혀 못하고 50㎏대이던 몸무게가 80㎏대까지 치솟자 요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양재천을 따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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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정경화 기자] 지난해부터 침체 기류가 불고 있는 충무로에 20대~30대 초반의 젊은 감독들이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로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3월 2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와 ‘작별’을 연출한 황윤 감독(35)은 1998년 영화 ‘길에서의 충고’로 데뷔했다. 2001년 제작한 영화 ‘작별’로 제 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운파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동물원에서 그리고 길 위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을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시각에서 그려내 호평받았다. 지난 28일에는 '어느 날 그 길에서'의 특별 상영회를 한국 도로공사에서 열며 작은 파란을 만들어가고 있다.

영화 ‘동거동락’의 김태희 감독은 25살의 젊은 나이로 40대 후반의 어머니의 사랑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가족의 유형을 영화에 담아냈다. 김태희 감독은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로 경험해보지 못한 중년의 사랑을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신선한 시도로 첫 장편 영화 연출작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히, 중년의 사랑을 불륜이라는 식상한 시선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영역이자 새로운 가족 틀의 생성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더했다.

오는 4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윤종빈 감독(29)은 자신의 대학 졸업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로 충무로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0만원의 저예산 영화로 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국제영화평론가 협회상, PSB 영화상, 넷팩상을 휩쓴다. 윤종빈 감독은 2년여의 시간이 흐른 2008년 호스트와 밤 문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비스티 보이즈’를 들고 다시 관객을 찾았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는 4~5월 개봉되는 기대작 중 하나며 개봉 후 흥행 선전이 기대되고 있는 영화다.

이외에도 영화 ‘은하해방대작전’의 윤성호 감독 등 청소년 영화제 출신 감독들이 메이저 상업 영화 데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시스템과 영화 제작 과정의 연기와 중단 등으로 20대~30대에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 감독이자 배우 오손 웰스는 26살의 나이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시민케인’을 완성했다. 그 시대의 젊은이는 시대의 변화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오손 웰스가 획기적인 영화 촬영, 연출 기술과 1930~40년 미국 경제 공황 이후의 인간성 상실 등을 영화에 담았던 것처럼 21세기 한국의 젊은 감독들도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아이디어로 중무장하고 충무로 입성을 노리고 있다.

성과 가족의 붕괴, 그리고 이의 재구성, 사회 전반의 변화를 과감히 영화의 소재로 가져온 젊은 감독들의 변혁이 충무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젊은 감독들의 신선한 바람이 영화계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재도약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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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빈약한 여배우층이 문제(영화계 위기진단②)

[마이데일리 = 정경화 기자] 한국 영화의 최근 추세는 남자 주인공을 투 톱으로 내세운 액션, 스릴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흥행작인 영화 GP506, 추격자, 숙명은 모두 남성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남자영화다.

올해 초 개봉된 영화 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 이후 여배우들의 활약은 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멜로, 로맨스 영화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힘 있고 호흡이 빠른 액션, 스릴러 영화에 관객들이 모이고 있다.

여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못한 것은 젊은 톱스타 여배우들의 흥행 부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고 올해 초 개봉된 영화 전지현 주연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김태희 주연 싸움, 한예슬 주연 용의주도 미스신, 송혜교 주연 황진이 등이 모두 흥행 부진의 쓴잔을 마셨다.

그 나마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손예진 김하늘 등 젊은 톱스타들이 대거 TV드라마로 빠지면서 영화에는 눈길을 끌만한 여배우들이 사라졌다. 특히 드라마에 비해 여배우 층이 앝은 한국 영화계에서 톱스타 여배우들의 흥행부진의 여파는 컸다.

최근 개봉된 영화 혹은 앞으로 개봉될 영화 중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한국 영화는 경축 우리사랑, 동거동락, 허밍, 도레미파솔라시도 등이 있다. 그러나 흥행 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주목할 만한 40~50대 톱스타 여배우 등 다양한 연령의 여배우들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줄리아 로버츠(41), 니콜 키드먼(41), 조디 포스터(46), 데미 무어(46), 할리 베리(40) 등 건재한 40대 스타들이 엄청난 개런티로 대작 영화의 주연을 맡아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 어웨이 프롬 허의 줄리 크리스티처럼 60~80년대 활약했던 여배우들도 여전히 노년의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에서 주인공 피오나 역으로 출연한 줄리 크리스티는 1965년 영화 닥터 지바고의 성공 이후 주조연으로 꾸준히 영화에 출연해 왔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류스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최근에도 마법에 걸린 사랑, 프린세스 다이어리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한국은 여배우의 나이가 30대 후반을 넘으면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40대가 지나면 몇몇의 배우가 남아 다수의 영화에 반복 출연한다. 그 만큼 감독은 캐릭터를 만들어 나갈 때 제약이 생긴다.

그러나 최근 30대 여배우 김혜수(38), 전도연(35), 이미연(37), 김선아(33), 예지원(35) 등이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연기를 선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 현재 30대 후반의 여배우들이 앞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면 빈약한 여배우 층에 대한 우려가 조금은 가실 듯 하다. 또한, 영화 동거동락의 김청, 영화 경축 우리사랑의 김해숙 등 중견 여배우들의 스크린 복귀도 눈길을 끈다.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가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다. 그 만큼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가 필요하다. 한국 영화가 최근의 부진에서 탈출하고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터운 배우층의 확보가 필요하다.

[30대 여배우 김혜수, 전도연, 이미연(왼쪽부터). 사진 = 마이데일리DB]

(정경화 기자 chmo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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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11 09:27 |최종수정2008-04-11 10:09


[마이데일리 = 장서윤 기자] 충무로 3대 기근…해법은 무엇?

'작가·투자자·배우가 없다'

지난해부터 위기 양상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충무로 기근'이 장기화될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07년 개봉작 112편 중 13편 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등 평균 투자수익률이 -24.46%(2006년 기준)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함에 따라 충무로 보릿고개는 심화되고 있다.

최근만 살펴봐도 3~4월 개봉작이 눈에 띄게 준 데 이어 더 큰 문제는 현재 제작중인 영화 편수가 확연히 줄고있다는 것. 이는 내년과 내후년 개봉작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어 '기근'에 대한 우려감을 더욱 커지게 하고 있다.

각 영화주체들에게 '위기의 본질'을 물으면 제작사는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투자자들은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배우들 또한 작품을 찾지 못해 방송으로 눈을 돌리는 'TV속으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단기적 해법'에 그치지 않는 충무로의 중장기적 위기 타개책은 무엇일까.

작가가 없다(?)

일선 영화 제작 관계자들은 '콘텐츠의 부재'를 위기의 일차적 원인으로 꼽는다.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신선하고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시나리오가 없는 것이 관객 외면 현상의 이유라는 것. 최근 영화 관객들이 점점 '스타'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는 현상도 '작가부재' '이야기부재'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발표되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살펴봐도 영화화가 가능한 시나리오는 50편 중 1편 꼴"이라며 "작품은 많지만 그 중 영화화에 적절한 소재나 구조를 갖춘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시나리오 작가들을 양성하는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것과 작가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현실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영화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편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려면 아이디어 개발부터 집필과 수정, 연출을 위한 후반 작업까지 보통 2~3년 이상이 걸리는 데 비해 입봉 시나리오 작가의 원고료는 2000만원 수준으로 들이는 공에 비해 턱없이 낮다.

또, 작가가 작품의 전반을 관할하는 드라마와는 달리 시나리오는 영화화를 위한 일정 수준의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품도 다수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신작 '마더' 촬영을 준비중인 봉준호 감독을 비롯, '타짜'의 최동훈 감독, '추격자'로 주목받은 나홍진 감독 등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감독들도 점점 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감독들이 연출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신작 발표에 몇년씩 걸리는 상황을 초래한다.

때문에 완성도를 갖춘 참신한 시나리오 개발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을 통해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가 신인들의 작품에 대해 조언해주는 멘토 시스템을 도입한 예는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또, 영화계 관계자들은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대학 강의 과정이나 전문양성기관들을 늘려 전문성을 갖춘 작가를 양성하는 것이 큰 차원에서 영화계 위기 극복의 방안"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투자처 다변화 '시급'

투자처를 다변화하는 것도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산업의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가운데 현재 주요 투자자들은 통신 기업 등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몇 개 투자자에 한정된 자본조달구조는 불안정한 구조를 낳을 뿐 아니라 비슷비슷한 영화를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산업정책위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한국영화산업 투자환경 및 자본조달구조' 보고서는 이같은 점을 지적하며 "제작사가 자체 자본조달능력을 확보해 기획 및 예산규모 다양성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공적인 대출 지급보증 시스템이나 제작사들간 중대형 규모의 공공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우들도 움직여야

배우들 또한 시장이 어려울수록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는 면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이영애, 최지우, 김아중 등 몇몇 스타급 배우들은 1~3년째 영화계에서는 두문불출하는 등 차기작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영화계 불황으로 인해 작품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배우들의 상황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이럴 때일수록 스타급 배우들이 작은 작품이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해주는 것이 시장이 살아나 함께 윈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김혜수·전도연·박은혜·김민선 등 일부 배우들은 개런티를 자발적으로 낮추는 방식으로 저예산·상업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충무로가 힘겹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는 요즘, 각종 위기의 징후에 대한 단기적 처방을 넘어 중장기적인 정책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묘안이 필요할 때다.

[사진 = 올 상반기 400만 관객을 넘어선 두편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왼쪽)과 '추격자']

(장서윤 기자 cie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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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i연구보고서
200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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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i에서 발행한 연구보고서
200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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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i에서 발행된 연구보고서 요약본
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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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영상인재 육성을 위한'전국 영상교과협의회' 출범 (2008-03-27)
 - 초대 회장으로 부산영상예술고 배창옥 교사 선임 -
 - 청소년 영상교육 제반사항에 대한 민-관 협력 협의체로 자리매김 -

2001년 미디어특성화고교가 처음 이 땅에 생긴지 7년여 만에, 국가 미디어산업 차세대 인재들의 체계적
양성을 위한 교육방향 수립 및 관련교육 정립을 위해 민-관 협력의 <전국 영상교과협의회>가 구성됐다.



※ 현재 전국에는 약 81개의 미디어특성화고교와 전문계고교가 분포되어 있으나,
특성화된 교과 커리큘럼이나 전문교과서, 전문교사는 미흡한 상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원장 권영후)과 전국의 31개 미디어
특성화고교는 3월 27일 오전 11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 회견장에서 국가영상산업의 차세대 인재양성
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국 영상교과협의회 창립총회>를 개최, 청소년 영상문화의 활성화와
체계적인 실습교육방향 정립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가졌다. 또 이날 총회에서는 초대 회장으로 배창옥씨
(부산영상예술고교 교사)가 선출됐다.

KBI는 지난 20년 동안의 방송영상제작 교육노하우를 기반으로 그간 관련 미디어특성화고교의 요구를 반영
해, 제작·실무교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전문교육연수 프로그램과 함께 특성화고교의 영상미디어
관련 교과서 개발지원, 우수 학생의 연수, 산학협력 창업지원 등의 주요사업들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

※ KBI 추진, 미디어특성화고교의 교육지원 사업
   - 2004년, 교사 학점인정교육 시행을 위한 교육부 인증 <원격교육연수원> 지정
   - 2007년, 서울시교육청 인증 교원대상 <특수분야 직무연수기관> 지정
   - 2006년~2007년, 전국 미디어특성화고 산학협력간담회 및 워크숍 개최
   - 2008년, 전국 미디어특성화고교의 교육협의체인 <영상교과협의회>의 구성을 지원

전국 81개 미디어특성화고교의 영상교육과 청소년 영상문화 저변을 확산하는 메인포스트로 기능할 영상
교과협의회는 향후 ▲고등학교 영상교과 교육과정의 표준화 및 교재개발 ▲영상관련 국가공인자격증
신설 및 자격증관련교육 실시 ▲청소년 TV 운영 및 청소년 영상물 제작 지원 ▲수학능력시험 직업탐구
영역의 방송영상(미디어)교과 신설 노력 ▲전국 청소년 동영상촬영대회 개최 ▲교원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 및 세미나 개최 등의 주요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한편 이날 창립총회에는 영상교과협의회에 참가를 희망하는 회원학교 31개교 56명의 교사 외에도, KBI
임직원을 비롯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련 공무원들이 참석, 국가 차원의 미디어특성화고의 전문교육
지원방향 수립을 위해 개별 학교의 다양한 애로사항과 의견을 청취했다.

KBI 권영후 원장은 "국가 미디어산업의 장래를 위해 전국에 있는 미디어특성화고교의 학교교육을 체계적
으로 지원해 미래 산업인력을 육성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고,"미디어산업
현업계와 현장학교의 의견을 반영해 미디어특성화고교의 제작교육기반을 튼튼히 하겠다"고 말했다.

□ 담당 : KBI 연수기획팀 곽규태 (02-3219-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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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포털이 동영상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터넷 및 영상 산업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고 이러한 변화가 각 기업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과거 텍스트나 이미지 위주였던 인터넷이 현재는 동영상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먼저중위권 포털인 야후, 엠파스, 드림위즈 등이 동영상 검색 서비스를 2005년에 시작했고, 뒤이어 NHN, 다음 등 메이저 포털들도 경쟁에 가세하였고, 대형포탈 뿐만 아니라, 판도라TV, 엠군닷컴, 노리터 같은 동영상 전문 포털도 활성화되어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가 증가하는 이유, 그것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파트 거주자를 대상으로 아파트랜, 혹은 광랜 이라고도 불리는 100Mbps급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랜은 2000년대 초에 등장했지만 파워콤이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 진입하면서 업체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가입자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2004년 말 100만 가입자를 돌파했고, 이미2006 2월 말 가입자가 180만 명에 달하였습니다. , 이처럼 영상중심의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 되면 어떤 변화들이 생길까요?

 

첫째, 고화질의 영상 애플리케이션 도입이 본격화되면 향후 그 활용 영역은 엔터테인먼트 부문뿐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 편의형 부문까지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특히 원격지에서 동영상 화면을 통해 진료를 하는 원격 의료를 비롯해 원격 교육, 영상 보안, 영상 회의 등이 주목을 받을 전망입니다.

 

둘째, 업계 측면에서의 변화도 급진적으로 나타날 전망입니다. 우선 인터넷 중심의 산업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관련 업계간 주도권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 통신, 인터넷, 미디어 업계가 차세대 영상 주도권 확보를 위해 동시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는 거죠. 통신업체 입장에서는 기존의 음성 중심에서 영상을 포함한 융합형 서비스 제공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인터넷 포털 쪽에서는 동영상 서비스 등을 강화하여 종합 미디어 업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방송사 역시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영상 컨텐츠를 무기로 디지털 회사로의 변신을 가속화하고 있는데요, 결국 업의 뿌리는 다르지만 이 세 업계가 차세대 영상 주도권 확보라는 공통의 목표 하에서 서로 경쟁하게 되는 것이죠.

 

셋째, 영상 분야의 지각변동이 예상됩니다.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음악산업의 경우, 인터넷 도입으로 기존 음반 시장이 크게 위축됐고 2003년을 기점으로 전통 음반시장과 온라인 음악시장 규모가 역전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영상 유통이 증가할 경우, 영상 부문도 음악과 유사한 온라인 전환 과정을 겪을 수 있고, 그렇다면 기존 영상 유통 채널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다만 영화와 음악은 소비 패턴에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영상 쪽의 온라인 전환은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은 영화 그 자체를 넘어서 친구나 연인과 함께 시간을 즐긴다는, 온라인에서 줄 수 없는 새로운 밸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터넷은 네트워크 고도화, 서비스 진화 등을 통해 우리 생활의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보다 근원적이고 사회 시스템적인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이죠.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인터넷으로 인해 세계화 3.0’ 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합니다. 세계화 1.0시대에는 티켓을 발급해주는 직원이 있었다면 세계화 2.0 시대에는 티켓 발매기가 그 역할을 대체했고, 세계화 3.0 시대에는 각자 스스로가 티켓 발매원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기회인 동시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데요. 그 동안 익숙했던 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기업은 판을 새롭게 읽는 눈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터넷이 시시각각 생활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변화의 흐름을 재빠르게 인식할 수 있는 전략적 통찰, 창조적 영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바로 보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통찰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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