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900만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하락한 2020년 오늘날 한국은 만 60세 이상이 전국민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평균 수명도 95세로 늘어나 만 70세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에 태어난 층)는 현재 총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뉴스를 보니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중도 지난해(2018년) 이미 14%를 넘어 고령사회(aged society)로 진입했고 7년 후인 2026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로 빠른 속도로 진입할 예정이다.
* 이미 발표된 데이터를기본으로 가공하였습니다.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취하시기 바랍니다.
논란 끝에 정부에서도 급증하는 베이비부머들의 복지비를 감당하기 위해 일정 기준시가 이상의 아파트를 살 때 취득세의 일정부분에 ‘노인복지세’란 명목을 신설해 부과하고 있다.
직장 근속연한이 짧아져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제생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국민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들었거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 베이비부머들은 공원과 지하철역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는 건 오래전 모습과 똑같다. 정부에서는 이들을 위해 일자리 알선과 놀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베이비부머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 중 몇몇은 며느리가 등떠밀듯이 싸준 김밥도시락을 싸들고 파주와 여주까지 연결되어 있는 전철을 타고 하염 없이 창밖만 보다가 오후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 분도 있다.
전자기기 다루는데 익숙하고 용돈이 두둑한 일부 베이비부머 몇몇은 아예 몇 시간이고 DMB방송과 한국형 닌텐도 게임을 하는 사치를 누리기도 한다. 지하터널 곳곳에는 움직이는 광고판을 설치해 의자에 설치된 이어폰짹만 연결하면 지루하지 않게 한 편의 뮤직비디오나 영화감상도 가능하다. 출입구 바로 옆 3명이 앉을수 있는 노인석도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좌석까지 포함해 2배 이상 좌석을 확대했다.
오늘날 지하철공사는 대한노인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하철공사는 만성적자와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노인우대제도 나이를 만 75세로 올릴 수 밖에 없다고 연일 언론홍보를 하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들 경제생활 은퇴에 따른 한국 부동산
경제적 능력을 상살한 베이붐세대들의 잇단 부동산 처분으로 일부 지역의 아파트와 토지는 가격이 주춤거리는 듯 했다. 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개별세대와 이혼율 증가와 같은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소규모 부동산은 크게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인구와 베이붐세대들의 잇단 경제생활 은퇴로 일부 입지조건 좋은 곳의 부동산을 제외하고는 갈수록 상승여력이 둔화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 15여년간 한국의 인구 및 가구 수 변화와 미래 인구 및 가구 수 변화 추정치를 반영해 산정한 결과 전국 주택수요 연평균 증가율이 2.6%~2.9%수준에서 꾸준히 줄어들어 2020년에는 2.09%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역별로보면 수도권의 주택수요 증가율이 15년 전인 2005년도에 3.54%에서 현재 2020년에는 2.5%로, 비수도권은 2.4%에서 1.7%로 각각 줄어들었다. 또 전국 주택 추가 수요 물량도 43만 가구에서 36만 가구 수준까지 내려갔다.
친환경/도심소형주택 수요증가
전체 주택수요가 줄어들었지만 고령화로 인한 편리성의 이유로 친환경, 소형, 도심소형주택에 대한 수요는 늘어났다. 지난 2004, 2005년 전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해서 구매력이 높아진 베이비부머(baby boomer) 때문이다.
1955∼63년사이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부머들이 사회에 진출해 집을 사기 시작한 80년대부터 아파트시장이 상승세를 탔고, 자녀들을 위한 생활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는 강남 아파트 사재기가 일어났다. 베이비 부머들이 그 당시 아파트 투자자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2015년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퇴직하는 시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는 빠른 고령사회 진입과 이에 따른 내수부진으로 지난 2008년말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부동산발 경제 불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부동산 버블 폭발하나
일본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1990년대 장기불황의 원인중 하나가 고령화였는데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상당부분이 저축성자산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인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소비를 하지 않아 결국 내수부진을 초래해 장기불황을 몰고 왔다. 지난 80년대말은 주택수요 증가가 가격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반면 2020년 오늘날은 주택수요보다는 유동성 과잉에 따른 투기적 수요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시나리오 대로라면 베이비붐 세대가 2015년 이후 주택을 중심으로 부동산 매각에 따른 충격으로 저성장 및 부동산 수요부족(60년대 후반 및 70년대 전반 출생한 X세대 인구감소)과 맞물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인 1968 ~1973(35~41세)가 주택시장을 받치고 있어 이들이 은퇴할때까지는 우려했던 만큼의 하락은 발생하지 않았다. 단, 전체적인 하락보다는 일부 수요가 없는 지역의 대형주택을 중심으로 일시적으로 거품이 빠지는 현상이 발생했을 뿐이다. 대신 실수요자와 투자자에게 인기가 있는 도심에 위치한 소형주택들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 가격도 강세를 띄었다. 그 동안 계속적인 금융교육과 정부의 부동산 억제책으로 인해 가계의 자산중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초반에서 선진국 수준인 50%까지 높아졌다. 부동산 담보가 활성화되어 매도하는 것 보다 장기역모기지론을 활용하는게 일반화 되었다.
실버산업 번창 vs유아산업 후퇴
베이비부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은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이 점차 녹아들어 영토분쟁과 영유권 논란이 세계적으로 한창이지만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바닷길이 열림으로서 ‘초호화 크루즈 북극관광 상품’도 부유층 노인들 사이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반면 소아과나 유치원 같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아산업은 붕괴되어 소아과 의사와 유치원 교사들은 정부의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1970년 100만명을 웃돌던 신생아 수는 현재는 20만명에도 이르지 못해 정부는 각 가정에서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자는 ‘둘둘플랜’(two two plan)을 내걸었다.
이와 같은 출산율 저하로 향후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정부에서는 주공아파트 뿐만 아니라 민간건설사와 연계해 민영아파트 분양시에도 파격적인 출산장려혜택을 주고 있다. 충청권에서 분양을 준비중인 한 건설사는 아파트 분양촉진차 잔금 때까지 1명을 더 출산하면 3년치 분유를 사은품으로 주고 추첨을 통해 미국 유학까지 보장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수년 내에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심지어 평양까지 도달할 수 있는 전철도 개통된다. 내년에 있을 지자체 선거와 내후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인들의 공약으로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전국 어디서나 전철을 이용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남북이 서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정부의 각고의 노력으로 해상과 육로를 이용한 금강산 관광이 다시 재개되었고 개성공단을 통한 물자교류도 활발하다. 몇차례 남북간 위기감이 있었지만 경제교류는 꾸준히 이루어졌고 북녘땅인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도 우여곡절 끝에 국산(made in korea) 상표로 수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통일에 대한 남북간과 미국을 비롯한 대외강국간의 시각차이는 예전보다 많이 좁혀졌으며 서울~평안간 관광 전철에 대한 기대감으로 남북통일도 머지않아 보인다.
난관에 부딪혀 앞이 캄캄할 때, 남들에 비해 내가 가진 조건이 다 불리해 보일 때…. 이럴 때 이 사람의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이 사람과 1시간 30분의 인터뷰를 마쳤을 때 기자는 지치기는커녕 마치 힘이 나는 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그는 지상 최고의 모티베이터였다.
일본전산(日本電産)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65·사진)사장. 이 사람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엮은 책 〈일본전산 이야기〉는 올 초에 나와 지금까지 30만부가 팔렸고, 삼성경제연구소는 'CEO들이 여름휴가 때 읽을 책 20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영자로 꼽힌다. 1973년 가정집 한 귀퉁이 창고에서 전기 모터 회사를 창업해 지금은 140여개 계열사에 13만명의 종업원, 매출 약 8조원의 그룹을 일궈냈다. 일본판 벤처 신화이다. 게다가 국내외 27개 회사를 인수합병(M&A)한 뒤 모두 경영을 정상화시켜 '기업 재생의 신(神)'으로 불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 재계 랭킹 100위권 밖의 중견 기업.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에 통쾌한 역전이 있고, 가슴 뛰게 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스스로를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괴짜 경영인이다. 그는 정형(定型)과 겸양이 미덕인 일본 사회에서 기행(奇行)과 파격(破格)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파격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벤처기업이 도쿄 식(式)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도쿄의 대기업에 승산이 전혀 없었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도쿄식을 거슬렀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래서 창안한 것 중 하나가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순서대로 뽑는, 기발한 신입사원 공채 시험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일본전산 교토 본사 20층에 있는 그를 만나러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4면이 모두 녹색이었다. 다무라 홍보부장은 나가모리 사장이 녹색에 대한 고다와리(특정한 것에 대한 마니아적 집착을 나타내는 일본어)가 있다고 귀띔했다.
과연 그는 녹색 넥타이에 녹색 행커치프 차림으로 나타났다. "왜 녹색인가" 물으니 그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준다. 역시 녹색. 소매를 걷으니 드레스셔츠의 커프스버튼까지 녹색이다.
"구성술(九星術-점성술의 일종)에 따르면 저는 흙(土)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흙은 식물, 즉 녹색이 없으면 썩어 버리죠. 그래서 녹색입니다. 녹색 넥타이가 1000개가 넘어요. 그리고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책상을 남쪽이나 동쪽에 둡니다. 회사도 반드시 남향 아니면 동향입니다. 곳곳에 사옥이 있고, 공장이 있는데 다 그래요. 그런데 도산한 기업을 인수한 뒤 가보면 공교롭게도 대개 북향 아니면 서향이에요."
늘 밝고, 기운찬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의 고다와리다. 사옥 1층엔 6개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모두 해바라기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엔 일곱 마리의 말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가모리 사장에게 고속성장의 비결을 묻는다. 그런데 그 대답이 우스울 만큼 간단하다. "남들보다 두 배 일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전산의 행동 지침은 이렇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창조경영을 논하고, 서번트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무모하다고 할 만큼 '전근대적'인 경영 철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이 없었다고 했다. "36년 전 창업했을 때 우리 경쟁 상대는 세계와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습니다. 그들에 이기기 위해서는 흙탕물 마시며 두 배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 일본전산의 핵심 가치인 '정열(情熱), 열의(熱意), 집념(執念)'을 나가모리 사장이 자필로 썼다.
일본전산의 핵심 가치는 '정열, 열의, 집념'이다. 나가모리 사장의 정열은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억양이 센 오사카변(사투리)을 쓰는 그는 목소리 크기도, 말하는 속도도, 대화에 몰입하는 정도도 다른 사람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사장님 책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왜 한국 CEO들이 사장님 이야기에 열광할까요?
"몇 달 전 한국에 갔더니 호텔 종업원들이 저마다 제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사장님이 읽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했다면서요. 일본도 30년 전만 해도 저 같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마쓰시다 고노스케나 모리타 아키오 같은 분들이죠. 그런데 요즘 일본 사람들은 '남들 두 배 일하라' 이런 말 하면 '힘들다', '괴롭다', '이젠 인생을 좀 즐길 때 아니냐'고 해요. 하지만 한국에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아요. '일본을 따라잡고, 일본을 앞지르려면 일본에서 성공한 것을 다 따라 배우자'고 말하는 사람이. 그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 나가모리 사장은 녹색을 좋아한다. 넥타이도, 지갑도, 행커치프도, 드레스셔츠의 커프스버튼도 모두 녹색이다. / 마이니치 제공
■능력의 차이는 5배, 의식의 차이는 100배
일본전산을 이야기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가모리 사장이 창업 초기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했는데, 인재가 오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장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군대 생활해보니 밥 빨리 먹고, 목욕 빨리하고, 용변 빨리 보는 사람이 일도 잘하더라"고 말했다.
나가모리 사장은 1978년 '밥 빨리 먹기 시험'을 실행에 옮긴다. 160명의 응시자 중 서류와 면접으로 절반 정도를 거른 뒤 남은 전원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그리고 가장 빨리 먹은 사람 순서대로 서른세 명을 무조건 합격시켰다. 커트라인은 15분이었다. 떨어진 사람들은 "무슨 이런 시험이 있느냐"고 아우성쳤고, 지역 언론은 "한심한 회사"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뒤에도 '큰소리로 말하기' 시험, '화장실 청소' 시험, '오래 달리기' 시험과 같은, 일본전산만의 시험을 고집했다.
"저도 원래는 도쿄대나 교토대 출신의 머리 좋은 사람을 뽑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엔 그런 인재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밥 빨리 먹기 시험은, 명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잠재 능력이 큰 사람을 뽑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밥 빨리 먹기 시험이야말로 어느 입사시험보다도 효과 만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일본전산에서 세계적 발명이 나오고, 세계 챔피언이 됐는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게 바로 그때 밥 빨리 먹고 목소리 커서 뽑힌 사람들이었어요."
범재(凡才)를 천재(天才)로 만드는 데 나가모리 사장만의 리더십과 동기 부여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능력의 개인 차는 아무리 커도 5배를 넘지 않지만, 의식의 차이는 100배의 격차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출중한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 그들의 하려는 의욕을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고속성장의 비결이다.
그가 무조건 두 배 일하라고 다그치기만 했다면 직원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전혀 다른 면모도 있었다. 결코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실패한 직원에게 점수를 더 주며, 부하에게 호통을 친 뒤에 뒤끝은커녕 두 배의 배려를 기울인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면 단 한 명의 구조조정도 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두 배 일하게 만드는 그의 노하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요즘도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사람 뽑습니까?
"지금은 밥을 먹게 한다든지 그런 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수십 년 데이터가 쌓여 있기 때문에 어떤 질문을 해서 어떤 대답을 하면 합격, 어떤 대답을 하면 불합격, 이런 게 시스템으로 돼 있습니다. 노하우지요. 기본적으로는 요즘 사람들이 예전처럼 '경쟁에서 이기자'는 정신이나 정열, 열의, 집념 이런 게 부족하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뽑는가 하는 노하우입니다. 수천 가지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예전에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저는 늘 '한 사람의 100보(步)보다 100사람의 1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천재보다 100사람의 1보가 낫다는 것이죠. 100보라고 해도 100사람이 한다면 한 사람에 1보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100보는 힘든 일이니까요."
―이건희 회장과는 반대군요?
"완전히 반대입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건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도 수백 년 전엔 그렇게들 말했어요. 나라 전체의 수준이 크게 뒤떨어져 있을 때는 그것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면 천재가 필요합니다. 한국도 그런 생각에서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나왔을 것이고요. 일본도 전전(戰前)에 그랬습니다. 재벌이 이끌고 갔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출중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성장이 더딘 이유가 그런 데도 있습니다."
■일이 즐거우니 두 배 일한다
남보다 두 배 일한다는 그의 사고방식은 그의 모친에서 비롯됐다. 그가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모친은 그를 거듭 말렸다. 그래도 그가 뜻을 굽히지 않자 모친은 그에게 한 가지를 조건으로 허락했다. 바로 "늘 다른 사람의 두 배를 일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농사꾼 집안의 6남매 중 막내였다. 남편을 일찍 사별한 모친은 아침엔 남보다 일찍 밭에 나가고, 밤엔 가장 늦게 귀가하는 '두 배 일하기'로 많은 전답을 사 모았다.
―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 사원들에게 두 배 일하라고 하지 않아도,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저절로 두 배 일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실천한 것이 바로 일본전산입니다. 30~40년 전만 해도 일할 데가 없으니 힘들어도 열심히 일했죠. 하지만 요즘은 능력 있는 사람은 어디 가서도 일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왜 여기서 일 하나?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그래요. 저는 돈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서 밤까지 일하나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일본전산엔 회사를 키우는 즐거움,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다른 기업을 인수해서 키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미국의 구글 같은 회사는 일을 즐기라고 해서 회사를 마치 놀이동산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도 일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퇴근하면 술집으로 갑니다. 노동의 질이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두 배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논다는 게 그래요. 매일 일하다 조금 쉬면 재미있지만, 매일 놀면 재미가 없어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 마시고, 파친코에 가고, 영화를 보고 합니다만, 그렇게 풀리는 스트레스라면 진짜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작은 스트레스이죠. 진짜 스트레스는 일 스트레스이고, 그것은 일로 성공해야 비로소 풀립니다."
(나중에 다무라 홍보부장은 두 배 일하라는 것이 무조건 '오래' 일하라는 것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일본전산의 하드워킹이란 '지적 하드워킹'을 말한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일하는 것, 일을 쉬고 있을 때나 무의식중에도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
■경제위기 이후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발본적 개혁 시동
―100년 만에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합니다. 사장님에게도 그랬나요?
"창업 후 36년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작년 말 리먼 브러더스 쇼크 이후 순간적으로 매출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우리 같은 제조업체는 보통 매출이 30% 줄면 적자를 보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매월 100억엔씩 적자를 보는 것으로 나와요. 그래서 어떻게 적자를 면할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도 성공한 기업들이 있었는데 그런 기업의 성공 비결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구조로 바꿔야 하겠다. 그러면 매출이 70%로 회복되면 이익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고, 매출이 100% 회복되면 이익이 두 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게 'WPR'입니다."
―WPR요?
"예. 'double profit ratio'의 약자입니다. (다무라 홍보부장은 'DPR'로 줄일 수도 있지만, 말하기 편하게 'WPR'로 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이 줄어도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이것을 전사적으로 검토했는데, 그랬더니 수만 건의 개선 항목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묶어서 사내 매뉴얼도 만들었어요. 생산성을 배가하고, 운영을 재편하고, 신사업을 개척하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잔업 4시간을 해서 하던 일을 잔업 없이 정시에 끝내자, 쓸데없는 회의는 없을까 같은 것도 철저히 검증하자, 그리고 하청기업 선정도 그룹 차원에서 통일 기준을 만들어 계열사에 지시했습니다. 다행히 매출이 아직 100%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내년 3월 결산기의 이익률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할 것 같습니다."
―잔업 4시간으로 하던 일을 정시에 끝내다니, 마치 마른걸레를 다시 짜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일본전산 같은 회사에서 직원에게 더 짜낼 게 남아 있습니까?
"마른걸레 짜는 것, 그런 일 저희는 안 해요. (웃음) 그런 도요타식 구식 합리화가 아닙니다. 그렇게 사원을 쥐어짜는 식으로는 위기 극복이 불가능합니다. 비유하자면 걸레로 청소하던 것을 전동청소기로 바꾸는, 그런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걸레로 10시간 걸리던 것을 전동청소기로 1~2시간에 끝내는 거죠. '정시에 퇴근해라.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일해라. 잔업 수당이 없어지니 곤란하겠지만, WPR로 수익을 내서 돌려주겠다.' 이런 것이 WPR의 요체입니다. 마른걸레 짜는 회사들은 직원들 목을 잘랐지만, 우리는 한 명도 감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론 결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누구나 궁금해하고 있지만, 노하우니까 공개할 수는 없어요."
▲ 나가모리 사장은 말할 때 제스처를 많이 썼다. 그는 대학 시절 대학신문 편집장과 변론부 활동을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오른쪽은 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 / 일본전산 제공
■부실기업 살리는 비결은 사원들의 병든 의식 고치는 것
나가모리 사장은 끊임없는 M&A를 통해 회사를 확장해 왔다. 그는 27개의 기업을 인수한 뒤 모두 흑자로 돌려놓았다. 그것도 한 명의 구조조정도 없이.
―부실기업을 살리는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원의 의식 개혁입니다. 부실기업의 특징은 사원들의 의식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닐까', '월급 못 받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안감 때문에 일하려는 의욕이 꺾이게 됩니다. 일본전산보다 큰 기업, 역사가 긴 기업, 기술이 뛰어난 기업도 경영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사원들의 의욕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 바로 경영자의 일입니다. 사원들의 병든 의식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이죠."
나가모리 사장의 부실기업 경영 정상화 방식은 철저히 현장 중심적이다. 지난 2003년 나가노현의 산쿄정기(三協精機)를 인수한 뒤 그는 매주 2박3일씩 출장을 갔다. 400㎞ 거리다. 그리고 작업복에 작업모를 쓰고 공장을 돌아다녔다. 2004년 9월까지 12개월 동안 일반사원-주임급 사원과 52회, 과장 이상 관리직과는 25회의 간담회를 가졌다. 가장 먼저 당부한 일이 자발적으로 10분 일찍 출근해 회사를 깨끗이 청소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사원의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출근 시간과 직장의 정리정돈, 그리고 전화 응대라고 말한다. 그는 의식 개혁을 위해 항상 '6S'를 강조한다. 정리, 정돈, 청결, 청소, 단정, 예의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그 여섯 가지만 잘하면 경영이 정상화되나요?
"전화는 엉망으로 받고, 사원은 지각하고, 공장은 더럽고, 이런 회사 중에 실적 좋은 회사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사실 6S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영 정상화를 하러 가보면 그것을 못하고 있어요.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점점 수익이 나기 시작하죠."
―오늘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십시오.
"오전 5시50분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6시50분에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30분 동안 경비에 관한 전표를 봅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고 회의를 하고. 점심은 10분 만에 먹습니다."
―10분요? 저녁도 10분입니까?
"저녁은 20분입니다. (웃음) 아침은 5분이고요. 그러니 5분-10분-20분입니다. 양은 많이 먹지만, 먹는 속도가 빠릅니다. 저는 365일, 휴가도 없이 일합니다. 쉬는 것은 설날 오전뿐입니다. 술도 끊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인생에 유일한 낙이 일입니까?
"일하는 것은 힘듭니다. 일 자체가 즐겁다기보다 일한 결과가 나오니 즐거운 것입니다. 처음에 이 방과 비슷한 크기의 공장에서 시작했는데, 36년간 계속 성장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세계에 진출하고 이런 것이 다 즐거운 것 아닌가요?"
■직원들에게 1주일에 1000통의 이메일을 보낸다
―사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습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게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야쿠자의 두목, 둘째 노동조합 위원장, 그리고 셋째가 사장입니다. 공통점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쿠자 두목은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회는 물론 가족들도 기피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교세라그룹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과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이른바 '교토식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신데,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사장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리고 그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이나모리 회장이 저보다 12살 위인데, 공통점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 열심히 일하고, 둘째, 미래의 꿈을 보는 소년이었고, 셋째, 삼류대학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많이 주는 직업훈련대학교 전기과를 졸업했다.)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그 양반과 식사를 같이하면, 저와 닮은 점이 있어요. 식사가 끝나면 둘 다 집에 안 가고 회사로 돌아갑니다. 노력가라는 것이죠. 교토의 기업들을 보면 CEO들이 모두 유니크한 사람들이에요. 헨진(變人)이죠. 그런데 경영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교토)는 창업자가 많은 곳입니다. 도쿄나 오사카는 샐러리맨투성이지만."
―대학 시절 대학신문 편집장을 지냈는데, 신문 만들어본 경험이 경영에 도움이 됐나요?
"경영자가 사람을 움직이려면 마음을 전하는 말과 문장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쓸 수 없는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편집장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대학 시절에 또 변론부 활동도 했는데, 사람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사원들에게 이메일을 많이 보낸다. 1주일에 보통 1000통을 보낸다. 출장 가기 위해 신칸센(新幹線)을 탈 때도 계속 이메일을 쓴다. '자네, 그건 틀린 것 같아', '잘했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런 내용이다.
"인간에게 모티베이션이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은 3일, 경영자라고 해도 2~3개월 정도죠. 따라서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해 주지 않으면 90%의 사람은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원들의 일하려는 의욕을 높이기 위해 이메일을 보냅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뒤 어느덧 약속했던 1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늘의 인터뷰를 즐기는 것 같았다.
■한국, 삼성·LG·현대 셋만으로는 꿈이 없다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 기업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한국 기업의 발전은 눈부십니다. 하지만, 한국엔 삼성과 LG, 현대 이렇게 셋밖에 없어요. 미국, 일본엔 수백 개인데, 한국엔 셋뿐이에요. 이래서는 젊은이들에게 꿈이 없어요. 이게 일본과의 차이입니다. 한국이 진짜 강해지려면 중소기업, 벤처기업도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젊은이에게도 찬스를 주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일본 추월도 가능합니다.
일본도 전후(戰後)에 소니나 혼다, 교세라 같은 기업들이 생겨났죠. 이런 게 안 생기면 진정한 의미에서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일할 의욕이 생길까요? 한국이 잘되려면 온실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아니라 흙탕물 먹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창업자가 많아야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야 하는데, 한국엔 선택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요. 공부 열심히 해서 가는 데가 삼성, LG, 현대뿐이라면 세상이 재미없지 않아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람은 만족해도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젊은이는 희망이 없어요. 바로 이런 점도 한국에서 제 책이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저 같은 삼류 대학 출신,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에게도 꿈을 주니까요."
나가모리 사장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그가 쓴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라〉는 책에 '정열, 열의, 집념'을 자필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신문에 실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그렇다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지" 하면서 미리 써서 인쇄해 둔 종이를 가져오게 한 뒤 기자에게 건넸다.
자네 말이 옳았어. 하루가 지났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분명했진 것 같군. 애플 제품의 '혁신성' 만큼이나 CEO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네. 미국 현장에서 혹은 한국에서, 밤새워 애플 개발자회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유일하게 실망한 대목이 잡스에 대한 일이었다지. 그가 늘 그랬듯 이번에도 프리젠테이션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기대했는데 아쉬움만 남았다는 자네의 '푸념'이 인상적이었네. 이미 영화의 명대사처럼 회자되는 애플 프리젠테이션의 하이라이트 '원 모어 싱' , 물론 이번에는 잡스의 깜짝 등장이었겠지. 숨죽이고 긴장한 채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네에게는 허탈함이었을 것이야.
덕분에 우리는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의 가치에서부터 애플의 전략, 세계 IT시장의 흐름들에 대해 즐겁게 토론할 수 있었지. 무엇보다 "인상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잡스를 바라 보는 자네의 경외심 탓이야.
한국에서 개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지난한 삶 인지를 잘 알고 있네. 게다가 자네는 시니컬하고 도통 외부 이슈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괴팍한 성격일세. 오죽하면 "자식들에게는 개발자 시키지 않는다" "벤처 CEO는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신념'이라고 말할까. 이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한 자네의 유별난 열정, 그것도 '광팬'임을 자처하는 모습은 놀라웠어. 의외였지.
우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네. 자네의 숨겨진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도 IT를 사랑하고, 벤처를 아끼고, 개발에 몰두하는 자네의 속마음을 엿보았어. 그 다음에는 덜컥 겁이 났네. 한 참 연배 높은 선배의 , '노파심'에서 비롯된 것일세. 잡스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무한적인 지지, '자네 말처럼 애정' 보다는 '열혈 신도'로 불러달라는 '확신'이 그렇다네. 배우고 지지하고 그 속에서 꿈을 키우고 실현하는 일은 멋지지만 혹 잡스의 또다른 면을 자네가 놓칠 수 도 있다는 일종의 '불안감'이지. 인정하네. 절대 동의하네. 스티브 잡스는 IT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기록되는 중이야. PC의 대명사 애플컴퓨터를 만든 사람, 토이스토리와 벅스라이프 라는 애니메이션을 일궈 내 IT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남자이지.
맥에서 아이팟, 아이폰이라는 기술과 개념의 혁신을 온 몸으로 증명해 주는 CEO, 앱스토어라는 기발한 착상과 가격 후려치기도 서슴지 않는 마케팅의 전설. 거인 MS와 정면으로 맞붙어 '맥은 'PC'와는 다르다는 조롱성 광고를 줄기차게 내보낸 강심장. 그래서 지금도 세상을 바꾸고 있는 위대한 변혁가.
서류봉투에서 맥북을 꺼내고, 청바지 속의 아이팟을 끄집어 내며 바지에 보조 주머니가 왜 필요한 지 이제야 알겠다고 농담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의 귀재. 누구도 자기 제품의 핵심 속성(얇고 작고 가벼움)을 이처럼 간단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야.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공연'이었어. 무대위의 잡스는 록스타 보다도 열광적인 팬을 보유한 엔터테이너이지.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강연은 또 어때. 딱 3가지만 말하겠다며 자신의 인생 역정과 변곡점을 진솔하게 풀어냈어. 잡스의 성공 신화 아래에 있는 '진실'을 알게해 주었어. 미국의 젊은이들이 부러웠네. 그같은 강연을 듣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잡스 이후의 감동은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뿐 이었네. 이 모두가 자네에게 꿈과 희망, 의지를 품게 해 준 동력이란 점에 동의하네. 고단한 현실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란 것도 인정하네.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자네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어. 맹목적인 사랑은 결국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네. 사랑은 본디 그런 것이지만 상대의 아픔과 단점을 알아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참된 의미를 가질테니까.
잡스도 인간적으로는, 기업가적으로는 굴곡진 인물일세. 드라마 같은 생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지. 스탠포드의 명연설에서 밝혔듯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 입양됐어. 친모는 양부모의 조건을 대학졸업자로 고집하기까지 했지. 자신도 입양아 이지만 정작 자신의 딸은 냉혹하게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네.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나기도 했지. 폭군에 가까운 경영 스타일, 충성심이 의심되면 친구이건, 동지이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성격이 요인이라고 하네. 토이스토리로 재기해 애플 복귀한 지 1년만에 적자 회사를 4억달러 흑자로 돌려 세웠지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네. PC를 개발한 워즈니악의 공을 가로챘다는 비난에도 시달리고 비즈니스에 필요하다면 배신과 배반을 바닥 뒤짚듯 감행한다는 지적도 받지. 특출한 개발자들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는 폄훼도 끊이지를 않아. 췌장암 선고와 투병 역시 단골메뉴에 꼽히네, 이번 개발자 행사에서 그의 등장을 '염원'했던 자네가 아쉬움을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하네. 누구에게나 롤모델은 필요해. 특히 같은 길을 앞서 간 훌륭한 전범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개발자요 CEO인 자네의 롤모델이 스티브 잡스라는 것은 그래서 다가오는 무게가 다르다네.
좋은 스승을 흉내내는 일에서 모든 완성은 시작되지. 하지만 잡스의 '성취'만을 겨냥하지는 말게. 그의 말처럼 결과론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환호'와 '박수'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을테니까. 자네와 내가 잡스에게 주목할 것은 오히려 간단한 이치일세. 즉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그의 노력과 철학이란 말일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잡스의 혁신성은 기술적 능력 보다는 출발점의 우월성이라 생각하네. 최고의 제품, 최상의 완벽성을 갖춘 기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네.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과 기술에 대한 끝없는 천착일세. 한국적 교육환경에서 성장한 우리와는 발상이 다르네. 기술과 품질은 누구라도 갖출 수 있지만 철학이 깔린 제품과 기술은 흔치 않지. 잡스는 임계치의 기술 보다는 손쉽게 사용할 수 있고 그래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정서적 대응력을 IT에 입혔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바꾸면 '창의성'이고 그것을 철저히 인간의 정서와 사용 친화력에 집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고통에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을 온 몸으로 부닥치는 자세는 잡스뿐 아니라 자네도 이미 획득한 전리품일 것이야. 그렇다면 '잡스교 신자'인 자네가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좀 더 또렷해 지지 않을까. 기술과 제품 제일주의에 대한 집착과 완고함에서 좀 더 자유로와 지기를 바라네. 벤쳐의 한계를 잡스 처럼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해결해 보라는 소박한 충고일세.
스티브 잡스는 IT역사와 전 인류의 자산이지. 천재성이 아닌 그의 삶과 철학이 핵심인 것 같아. 자네도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고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 행복 하겠네. 병마를 훌훌 털고 현업에 복귀하는 잡스를 보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일세. 그에 앞서 자네가 최근 개발한 제품, 시장에서 대박이 나도록 응원하겠네. 열정을 '분노'와 '냉소'로 맞바꾸지는 말게.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소리치게나. 그래도 개발자, 벤처CEO는 가치있는 직업이니까. 자네의 우상인 잡스가 저 멀리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